생활 속에 살아 있는 우리 옷

  • 해당내용 트위터로 바로가기
  • 해당내용 페이스북으로 바로가기
  • 인쇄하기
  • 복사하기

한민족이 살아온 시간 속에는 의식주를 포함하여 삶에 관련된 모든 것들이 함께 담겨 있다. 그중 의생활은 시대 상황과 민족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우리 한민족의 의생활은 그 시작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신석기 시대 유물 중에 실을 짓는 가락바퀴와 뼈바늘, 베실 등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그 무렵부터 옷감을 만들고 옷을 지어 입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민족의 의생활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일생을 살면서 연령, 성별, 상황에 따라 옷을 구별하여 입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무병장수를 위해 흰색의 배냇저고리를 입히고, 태어난 지 100일이 되면 100조각의 천으로 만든 옷이나 100줄로 누빈 저고리를 입힘으로써 아이의 무탈함을 기원한다. 아이가 돌이 되면 여러 가지 색 천을 이어 만든 색동소매가 특징인 돌복을 입히고, 옷에 사용하는 색과 문양을 통해 아이의 건강과 복을 기원한다.

  • 색동 소매에 남색의 깃, 끝동, 고름이 있고 자주색 무가 달린 오방장두루마기
    (남자아이의 돌옷)

  • 회갑연에 입는 오방장두루마기

성인이 되어 사람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의례 중 하나인 혼례婚禮를 할 때는 화려하고 장중한 옷을 입는 것이 특징이다. 혼례복은 신랑과 신부에게 건강과 행복 등 여러 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지닌다. 신랑은 단령포에 사모를 쓰고, 신부는 연꽃, 모란, 동자 등 부부의 백년해로의 바람이 담긴 의미의 자수가 놓인 활옷을 입고 화관을 쓰거나, 원삼을 입고 족두리를 착용한다. 61세에 회갑을 맞았을 때 부모님이 살아계시면 돌 때와 같이 오방장두루마기에 전복, 복건을 쓰고 부모님을 뵈었다고 한다. 상례喪禮를 치를 때는 상복喪服을 입는데, 흰색으로 장식이 없는 단순한 형태로 만들고, 고인을 잃은 슬픔과 삼가는 의미를 갖는다. 제례祭禮에는 조상을 기리는 경건한 마음을 표현하고자 백색, 옥색 등의 화려하지 않은 색의 옷을 입는다.

이렇게 한민족의 출생부터 죽음까지 일생에 더 나은 삶을 살기 바라는 바람과 다른 이와의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서 행복을 찾고자 하는 의미를 의생활을 통하여 엿볼 수 있다.

사람의 일생 돌, 혼례, 회갑, 조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한민족의 옷차림, 그 시작은 머리부터 발끝까지이다
오늘날 한복 형태가 만들어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옷의 형태는 알 수 없지만 신석기 시대부터 동물 가죽을 이용하거나 마를 재배하여 만든 직물로 옷을 만들었으리라 추측되고 이 시기부터 원시적인 옷을 만들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이 후 유라시아 유목민의 상의와 하의가 나누어진 형태(스키타이계 복식)가 전해지고, 북방에 살던 기마민족의 민족적 특징이 더해지면서 옷의 기본 형태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 시대는 고대국가의 면모를 갖추고 제도적인 정비와 함께 복식제도가 만들어지면서 다양한 복식 문화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이때의 복식은 현재 한복의 기본 형태라 할 수 있는 바지, 저고리, 치마, 포가 명확하게 나타난다. 이 시기는 신분제도를 바탕으로 귀족 복식과 평민 복식이 구분되었고, 왕을 비롯한 귀족의 복식은 권력과 부를 과시하는 화려한 형태로 변화했다. 특히 관리들의 품계(品階)에 따라서 관모(冠帽), 모자를 장식하는 관식(冠飾), 관복의 색(色)을 다르게 하는 복식제도가 제정되었고, 이것은 고구려ㆍ백제ㆍ신라 삼국이 조금씩 달랐다. 삼국의 기본 복식은 대개 비슷한 형태로 모양과 색깔만 다양해졌을 뿐 기본 구성은 그대로 이어진 것이었다. 구체적인 형태는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상의인 저고리와 포는 직선의 깃으로 앞을 여며 입으며 소매가 좁고 옷의 가장자리에는 장식 선을 두르고 있다. 저고리 길이는 엉덩이를 가릴 정도이며, 포는 종아리 선까지 내려오며, 허리에 띠를 맸다. 바지는 통이 좁은 것과 넓은 것, 당을 대고 있는 궁고 등의 형태가 있다. 신발은 목이 긴 것과 목이 짧은 것이 있다. 남자의 경우 깃털 장식의 모자를 쓰는 것이 특징이다.
  • 새 깃털을 장식하는 조우관을 쓰고, 바지와 저고리를 입은 고구려 남성
    (고구려 고분 무용총 벽화)

  • 주름치마와 저고리를 입은 고구려 여인
    (고구려 고분 쌍영총 벽화)

한민족의 옷차림, 그 시작은 머리부터 발끝까지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의복의 형태는 한국 고유의 기본 양식과 중국에서 들여온 외래 양식으로 구성된 복식의 이중 구조 현상이 나타난다. 통일 후 차츰 나라가 안정을 찾고 중국 당唐나라와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당풍唐風의 영향을 받은 복식이 많아지면서 지배계층은 호화로운 의생활을 했다. 그러나 복식으로 신분을 구별 지어 신분 사회를 유지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화려한 의생활로 신분 체계와 나라의 경제에 영향을 주게 되자, 834년 신라 42대 흥덕왕興德王이 백성들에게 사치를 금하는 법령을 만들어 백성들의 의생활을 규제하였다. 이 법령에서 신분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복식의 종류와 재질을 제한한 것을 보면 복식과 의생활이 다양하고 화려하게 발달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귀족층의 경우 평상시에는 평민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고유의 옷을 입고 겉옷 위에 당나라에서 들여온 소매 짧은 반비를 착용했으며, 관복으로는 당나라에서 들어온 단령포를 입었다. 여성의 경우 속옷 위에 짧은 저고리인 단의를 입고, 예를 갖춰야 할 경우에만 포의 종류인 표의를 덧입었으며, 허리에는 천으로 만든 허리띠를 맸다. 표의 위에는 배자의 일종인 소매 없는 배당이란 옷을 입었는데 주로 여인들만 입었다. 그러나 평민에게는 대부분 허용되지 않았고 주로 우리 고유의 옷을 입었다.
고유 옷차림은 유지하면서 문화와 풍습은 변화하다
고려가 건국된 후 평민들은 여전히 신라의 복식을 이어받아 생활하였지만, 지배계층은 중국의 송宋, 원元, 명明의 영향으로 그들의 복식제도를 들여와 고려의 제도를 만들면서 왕과 관료들의 옷에 변화가 있었다. 특히, 고려 후기 원나라의 간섭기 시기에는 몽골족의 복식문화에 영향을 받으면서 ‘몽고풍蒙古風’이라 하여 원의 풍습이 고려에서 유행하였다. 반대로 원나라에서는 ‘고려양高麗樣’이라 하여 고려의 풍습이 유행하면서 서로의 복식문화에 영향을 주고받았다. 이 때 영향 받은 풍속과 복식이 지금까지 남아 있기도 하다.
옷의 형태는 전 시대에 엉덩이 선까지 내려오던 저고리가 허리선까지 올라가고, 원나라 옷의 영향으로 상의가 좌우로 깊숙이 여며 입는 구조가 되면서 매듭으로 만든 단추를 사용하였다. 소매는 넓어지고 길이가 길어져 손을 덮을 정도였다. 여성 치마의 경우 잔주름을 많이 잡아 둥글게 입었고, 남녀 모두 모시로 만든 백저포가 유행하였다.
  • 흰색의 백저포를 입은 모습. 이제현 초상, 고려, 국보 110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허리선 길이의 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그 위에 포를 입은 모습. 조반 부인 초상, 조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옷차림이 예禮를 만들다
조선 시대는 건국 초기까지 고려의 복식이 그대로 유지되었고, 점차 특유한 형태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명明과 청淸과의 교류로 초반에는 그들의 복식제도를 받아들여 그대로 입었으나, 차츰 독자적인 복식제도와 체계를 갖추던 시기이다. 또한 조선시대 복식의 특징 중 하나는 예복禮服이다. 성리학(유교)을 통치 이념으로 삼았기 때문에 성리학에서 중요시하는 예禮가 곧 법이고, 인간 생활의 규범이라 생각했다. 따라서 우리 옷은 예를 표현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 중시되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등의 법전에는 왕을 비롯한 왕실과 양반 계층 등 각 신분의 복식에 대해 자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즉 의복에 사용된 색, 문양, 소재, 장신구 등에 차이를 두어 왕과 신하, 지배층과 일반 백성의 신분 차이를 분명하게 차이를 두었다. 이렇게 독자적인 복식제도를 가지고 있었지만, 지배층은 상황에 따라서 중국의 명과 청과의 교류를 통해 들여온 복식과 우리 고유의 복식을 모두 입었다. 일반 백성은 시대가 변하면서 형태 변화만 조금씩 있었을 뿐 우리 고유의 복식을 그대로 입었다.
여자 옷은 조선 초기 허리선까지 내려오던 저고리가 중‧후기에는 가슴 선까지 올라가는 길이가 되면서 ‘하후상박’, 상체는 밀착시키고 하체는 풍성하게 하는 여성의 복식미服飾美가 극에 달하였다. 남자의 경우 조선 초기에 평상복이 발달하여 포의 종류가 단령, 답호, 철릭, 액주름포 등이 있었고, 17세기 이후에는 옷들의 세부 형태가 변하여 겉옷의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여성보다 남성이 다양한 겉옷 연출이 가능하였다.
  • 깃, 고름 끝동, 곁마기에 천을 덧댄 여자 삼회장저고리

  • 주름 잡은 치마와 저고리를 연결하여 만든 남성의 겉옷인 철릭

  • 각종 보석으로 장식한 족두리

  • 호박장식 삼작노리개

한민족의 의생활은 대체로 오랜 세월 동안 큰 변화 없이 이어져왔고 다양한 옷과 장신구 등을 통해 삶에 대한 복을 기원하는 바람과 독특한 미의식을 담아왔다. 한복의 기본 구조는 외부의 영향 및 시대에 따라 일부 변하기는 하였지만 근본적인 변화 없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음을 볼 때 우리 옷 ‘한복’에서 한민족의 온화하면서도 끈질긴 민족 정체성을 엿볼 수 있다.

한복 및 장신구
사진 제공 (제3장)
  • 오방장두루마기 | 이영임
  • 오방장두루마기 | 당초문한복 | 김인자
  • 삼회장저고리, 족두리, 노리개 | 그레타리 한복 | 이용주
  • 철릭 | 중앙대학교 | 소황옥
자료 사진 제공
(제3장)
  • 사람의 일생, 돌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공공누리 1유형 자료
  • 사람의 일생, 혼인식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공공누리 1유형 자료
  • 사람의 일생, 회갑연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공공누리 1유형 자료
  • 이제현 초상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공공누리 1유형 자료
  • 조반 부인 초상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공공누리 1유형 자료
도움 주는 책들
  • 국립민속박물관 | 한민족역사문화도감 -의생활- | 국립민속박물관 | 2007
  • 류희경, 김미자, 조효순, 박민여, 신혜순, 김영재, 최은수 외 | 우리 옷 이천 년 | 미술문화 | 2008
  • 소황옥 | 전통한복 여자한복 만들기 | 경춘사 | 2004
  • 손경자 | 전통한복양식 | 교문사 | 1990
  • 조효순 | 한국인의 옷 | 밀알 | 1995